- 머리만 옮길 수 없을까?
- 암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말아야 할까?
- 딸이 친자가 아니었음을 알려야 할까?
-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해야 할까?
- 인간을 복제할 수 있을까?
- 네안데르탈인이 다시 살아난다면?
이 흥미로운 질문들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79가지 의료 딜레마
중 일부이다.
과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생명과 삶의 질에 혜택이 되고 있는 만큼이나 트레이드 오프로 반작용하는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겼다. 그동안은 불가능해서 굳이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질문들이 이제는 심사숙고해야 할 타이밍이 된 것이다. 대신 우리는 책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참신한 주제를 충분히 접할 수 있다.
책을 이루는 뼈대 논리 구조는 딜레마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알다시피 딜레마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다. 대신 치열한 논쟁 끝에 나름의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까지 설득력을 얻기 위한 논증 방식이나 객관적 정보 등 결론에 이르는 중간 과정에서 배우고 얻을 것들이 많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인하고 창의성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에 딜레마 문제는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러한 의료 행위와 관련된 딜레마들을 다룬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재미, 정보, 깨달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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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일단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재미이다. “머리만 옮길 수 있을까?”와 같은놀라운 과학 기술
이 등장하기도 하고, “딸이 사실은 친딸이 아니었다”와 같은막장 드라마
소재거리가 등장하기도 하며, “남녀가 같은 병실을 써도 될지”와 같은 다소발칙한
(?) 문제들을 다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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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진 않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
이 주제들은 실제 일어났던팩트
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법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에 적잖이 놀랐으며, 인간사가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는지 색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질병과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나약하고
원초적
이다. 학교, 직장 등 대다수의 평범한 일상에는 가려져 있었던 인간의 욕망이나 자연의 섭리 앞에 불가항력인 벌거벗은 인간들의 모습이 79가지 주제들에 그대로 투영된다.때로는 추해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남의 시선, 매너, 겉모습 따위의 허상을 한꺼풀 더 벗겨낸 삶의
진솔함
을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각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도 더욱 솔직할 수 있었으며, 억지로 감춰뒀던 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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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생각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논증의 대립으로 가득 차 있다. 뜬금없이스스로의 왼쪽 발을 잘라달라는 환자가 찾아오면 얼마나 황당할까?
처음엔 당연히 발을 자르면 안된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이 환자는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
BIID(신체 통합 정체성 장애)
를 앓고 있는 환자로써 자신의 왼쪽 발이 남의 발 같은 이물감에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잠시 환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손톱 가생이에 삐져나온 일어난 작은 손톱이 거슬리는 느낌일까? 떼고 싶은데 크게 붙어있는 딱지 같은 느낌일까?겪어보지 않았으니 이 환자의 불편함이나 이물감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유발하는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당연히 자르면 안된다.”라는 정의는 내가 아는 수준의, 상식 세계에서나 통하는 대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조금 더 나아가면 인간이 당면했으나 아직까지 답을 내지 못하는 근원적인 철학에 이르기도 한다. 특히 합리성과 최대 행복을 강조하는
공리주의
는 책에 등장하는 주제들에 단골 손님처럼 등장하는 결론의 주체이기도 하다.인간 복제, 머리를 바꾸는 주제는 더욱 더 많은 생각을 돋구게 한다.
테세우스의 배
와 같은 역설은 그러한 생각 중 하나이다.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서른 개의 노가 달려 있었고, 아테네인들에 의해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유지 보수되었다. 부식된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기를 거듭하니,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라는 것들에 대한 논리학적 질문’의 살아있는 예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플루타르코스
“지금 살고 있는 나는 나인가? 10살 때의 내가 지금 40살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테세우스의 배처럼 우리 몸은 적지 않은 세월을 거치며 다른 세포들로 채워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 복제로 나를 대신해도 문제 될 것은 없지 않은가? 가만.. 생각해보니 일상의 과학법칙이 통하지 않는 양자 역학 미시 세계도 우리몸과 비슷하네. 일반 상식이 통하는 경계선은 어디일까?..”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철학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평소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큰 독자라면 굳이 철학을 접하려 애쓰지 말고 흥미로운 문제들로 자연스럽게 철학에 빠져보길 권유한다.
철학에 쉽게 발을 담글 수 있는 징검다리
는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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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성찰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무거운 주제들이다. 때문에 생각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어 문제를 당면하지 않는 이상 깊이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고민하고 싶어도 일부러 시선을 회피하게 된다.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질병과 죽음이라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이든 소중한 가족이든 간에 겪는 아픔과 당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밝은 분위기와 웃음을 유발하는 질문들을 통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점
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이다. 감정이 일상 속에서 거부해왔던 주제들을 흥미 속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 줄 기회를 준다.“아.. 나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만약 이런일이 일어나면 이렇게 대응해야 겠다..”와 같은 깊이 있는 사색에서 비롯된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면 갑작스레 죽었을 때 가족들이 의사 결정하지 못할 상황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평소에 마련해 둔다거나, 긴 혼수 상태에서 깨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채 고통속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면 산소 호흡기를 떼어 달라는 의사 표현 등을 평소 해 놓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피하려고 했던 어두운 주제는 습관적으로 미루게 된다. 늘 미루다 생애 마지막에 소중한 것을 깨달아도 대응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이 책 덕분에 함께 웃으며
미리
생각할 수 있어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더불어 죽음과 삶의 경계 혹은평범한 것들의 소중함
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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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상식과 최신 과학기술 정보
이 책이 한가지 더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나름의 정답
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딜레마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현 의학계와 전문가들은 어떻게 풀어냈는지, 또 다른 의견을 가진 진영은 어떤 대답을 제시했는지, 혹은 저자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한지 고민하고 조사한 바를 정리해준다.비록 각 진영의 대답들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결론이 도출되기 까지의 논증과 논거
라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의견과 입장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은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진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데 도움이 된다.
앞서 설명했듯 책은 79가지의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주제를 약 4페이지에 걸쳐 다룬다. 파트별로 짧게 구성되어 있으니 읽는데 큰 부담도 없고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블로그 글 하나 읽듯이 가볍에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또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출퇴근 시간이나 짜투리 시간 혹은 쉬는 시간
에 한 주제씩 읽으면 잠시 다른 세계에 빠져들어 기분도 전환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끝으로 이 책은 빨리 읽지 않을 것을 권유드린다. 1일 1주제
정도로 출근 시간에 읽은 질문을 점심시간, 휴식시간, 퇴근시간, 취침 전까지 몰입하듯 깊게 생각한다면 넓은 세계가 머리속에 펼쳐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새롭게 등장하는 질문들은 창의성과 사고력
이 깊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 보는 시야
를 크게 넓혀주는 것 같다.
읽는 내내 재미있고 흥미로운 질문으로 읽는 동기
를 부여해주고, 바쁘게 살아가느라 생각할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 여유와 깊이
를 선물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