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성희 : 제가 번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이해가 더딘 머리로 이런 저런 원서를 읽어야 할 때마다 한글로 된 책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서는 번역의 품질이 매우 중요합니다. 엉터리 번역서는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차라리 종이를 아껴서 환경 보존에 이바지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요. 일례로 예전에 C++ 책 한 권을 서점에서 샀는데 집에 와서 찬찬히 읽다보니까 분명히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우리나라 말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정말 그런 개판인 번역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 이전에도 짤막한 컴퓨터 잡지 기사라던가 제품 설명서 등을 번역한 경험이 있었습니다만 두꺼운 책은 약간 겁이 나더라구요. 그래도.. 사나이가 칼을 뽑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니 꼭 해야 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 인터넷으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까 당연히 O"Reilly의 주옥 같은 원서를 많이 읽게 되는데 그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의 전문 서적 시장이 크지 않은데다가 번역을 한다고 하더라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고 그러니까 책으로 만들어줄 출판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서점의 컴퓨터 코너를 가 보십시오. 한글로 된 책은 거의 모두가 입문서 밖에 없습니다. 입문서가 아니면 팔리지 않아 아예 기획도 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강남의 모 서점에 갔다가 "Building Internet Firewall"이 "인터넷 방화벽 구축하기"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얼마 전에 힘들게 다 읽은 책인데 이럴수가 번역본이 있었다니… 그래도 샀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 좋더군요. 표지에 붙어있는 스티커에서 한빛미디어의 URL과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웹 사이트를 방문해서 무조건 메일을 썼지요. "저는 이런저런 사람인데요 혹시 이 책이나 저책을 번역할 기회를 주실 수 있나요?"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마침 한빛도 메뚜기 책(DNS and BIND, 3rd Ed.)을 번역할 사람을 찾고 있었더군요. 그때부터 한빛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부 번역단이구요.. ^^.
한빛 미디어 : 지금 번역을 하고 계신 『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 SVR4』과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혹시 이번이 처음 아니신지.. ^^ ? 아내 이수진 : 데이콤에서 한 3년 정도 있을 때 유닉스 시스템/네트워크 프로그래밍 일을 했어요. 물론 대학 때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란 과목이 있어서 이론적으로 배우긴 했었지만, 사실 그땐 너무 피상적이라 피부에 와 닿질 않았죠.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며 한 3년간 실무로 배우면서, 아.. 이런거였구나 하고 그제서야 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이 책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O"Reilly의 책들 중에 내가 번역할 수 있는 책을 찾다 이 책을 발견했고, 책을 번역하면서 "그 동안 내가 왜 이 책을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가 진작 이 책을 알았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책 저 책 살 필요 없이 이거 하나로 충분했을텐데…." 정말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구요. 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 실무를 시작하려는 사람, 또는 대학에서 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자신 있게 이 책을 권하겠습니다. 남편 이성희 : 저는 전산과 출신이지만 유닉스 시스템 및 네트워크 관리 (그리고 당구) 등에 관심이 있으며 프로그래밍과는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과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이 책의 번역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오로지 집사람 때문입니다. 집사람은 저 때문에 잘 다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건너와서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무언가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함께 고민을 하다가 문득 번역 작업이 생각 났습니다. 집사람이 번역할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이 사자책(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 SVR4)이 눈에 띄었습니다. 내용면에서나 가치면에서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한빛에 연락을 해서 이 책은 꼭 번역이 되어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무조건 설득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책의 성공 여부에 다소 회의적이셨는데, 아마 메뚜기 책(DNS와 BIND, 3판)과 망치 책(유닉스 파워툴)으로 다져진 인연을 뿌리치지 못해 오케이를 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8-)
한빛 미디어 : 번역하시면서 생각하신 이 책이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내 이수진 : 바로 위에 얘기 했듯이, 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알아야 하는 사람은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유닉스에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다입니다. 왜냐구요? 제가 알기에, 아직 거의 모든 회사에서 유닉스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요. 물론 NT를 비롯한 다른 시스템도 이용하고 있는 회사들이 있지만, 주류는 여전히 유닉스죠. 유닉스에서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물론 제 의견이지만, 아직은 C 입니다. 자바니 뭐니 아주 좋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많다는 것은 저도 인정을 합니다. 저도 이와 같은 언어를 공부하고 있구요.. 그렇지만, 실무에 있어서, 안정성과 속도, 기능면에서, 그리고 개발자가 시스템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 있어서 아직은 C 라고 봅니다. 또 다른 언어로 개발한다고 해도, 이미 개발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C프로그램이기 때문에 C시스템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유능한 유닉스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다고 봐요. 따라서, 이 책은 유닉스에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한권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바이블입니다. 이것 저것 같은 종류의 책, 많이 필요 없습니다. 정말 이 책 하나면 딱! 입니다. 참, 그리고 이책을 보려면 기본적인 C 프로그래밍과 유닉스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어야 하는 건 아시죠? 만약, 그 쪽에서 초보라면, 우선 C와 유닉스에 대해 공부하신 후 이 책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반면, 시스템 프로그래밍 중에서도 네트워크 프로그래밍을 주로 하셔야 한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이책을 보시고, 더불어 네트워크 프로그래밍 책을 한 권 더 보셔야 할 겁니다. 이 책도 충분히 네트워크 프로그래밍 소개가 있지만, 네트워크 프로그래밍이란 분야는 알아야 할게 너무 많아서, 그 쪽만 더 자세히 설명된 책을 참조해야 할 때가 많거든요. 남편 이성희 : 아까 제가 시스템 관리자이기 때문에 이 책과 별로 친하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시스템 관리자는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훌륭한 시스템 관리자는 프로그래밍도 잘해야 합니다. 해야 할 언어도 다양합니다. C 언어는 기본이고, 펄도 해야 하고 셸 스크립트도 해야 합니다. 시스템 관리에 필요하다고 느끼면 간단한 프로그램은 뚝딱 만들어 쓸 수 있어야 좋은 관리자입니다. (프로그래밍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저는 절대 훌륭한 시스템 관리자가 될 수 없을겁니다. 흑흑) 지금 당장 이 책이 필요 없다고 해도 옆에 두고 있으면 곧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한빛 미디어 : 번역을 하시면서 느낀 이 책의 특징은요? 아내 이수진 : 일단, 너무 두껍지도 않고 너무 얇지도 않은 딱 적당한 분량이예요. "갑자기 왠 분량?" 이라고 하시겠지만 전 학교 다닐 때도 책이 너무 글자가 많다던가 글자가 작다던가 너무 두껍다던가 문장이 너무 길다던가 하면 잘 안봤어요. 전 글자 크고, 내용 간결하고, 그림 많고! 이런 책을 좋아해요. (이성희씨랑은 정 반대예요. 이성희씨는 깨알 같은 글씨로 지면을 아껴가며 작성된 책이 좋대요) 제가 보기에 이 책은 딱 좋아요. 내용이 간결하고, 유용한 소스코드도 군데군데 많이 있구요, 실제로 잘 사용되지 않고 어렵기만 하면서 자질구레한 부분들은 깔끔히 정리되어 있어요. 그 대신 실제 자주 쓰이고, 알아야 하는 부분은 어떤 책보다 더 쉽게 잘 설명되어 있어요. 특히, 다양한 유닉스 버전간에 이식성에 대한 부분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보통 회사에서는 여러가지 시스템에 여러가지 버전의 운영체제를 두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내용은 정말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남편 이성희 : 저는 글자 크고 내용 허술하고 너무 여백을 강조한 책은 딱 질색입니다. 작은 글자로 여백을 줄이면서 알차게 적혀있는 책이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Tolkin의 "반지전쟁" 번역서는 "짱"입니다. 그런 책은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책입니다. 이 사자책(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 SVR4)도 그럴 것으로 믿습니다. 한빛 미디어 : 긴 번역기간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내 이수진 : 글쎄요..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지만… 번역기간 중에 아기를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유닉스 시스템 프로그래밍 SVR4는 신랑과 나와 아기 이렇게 세 명이서 공동 작업한 책이나 다름 없답니다. 음… 그리고, 원고가 좀 지연되었었어요. 한빛 분들께서 양해해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요. 변명이라면, 번역기간 중 한국에 한달간 나갔었는데, 그때 반가운 친구들, 가족들 만나고 그러느라 거의 작업을 못했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나가니까, 먹을 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신나더라구요. 헤헤. 일정을 들으니 대략 5월 말쯤 책이 출간된다고 하더군요. 6월 초가 제 출산 예정일이거든요. 건강한 우리 빠야콩(아기 별명)과 함께 좋은 책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남편 이성희 : 집사람 별명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또자"와 "찡찡이"가 가장 유명합니다. (우리 애기 별명은 빠야콩이구요.) 스케줄에 맞춰 원고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또자"고, 제가 잔소리라도 하면 이러쿵 저러쿵 "찡찡"거리고 그랬습니다. 번역 기간 내내 그랬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는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한빛미디어 : 책 번역 하시느라, 인터뷰에 응해 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두 분께 많은 감사를 드려도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 좋은 책,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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