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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모바일

2001년 자바 총결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장"(5)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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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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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7,199

제 5부 - "자바" 기술자의 고뇌

저자: 이아스님

저는 아침마다 가보는 자바 관련 사이트가 세 곳 있습니다. 첫번째는 썬의 자바 공식 사이트, 두번째는 자바 스터디 네트웍, 그리고 세번째는 자바누리입니다. 이중 한국의 사이트들에는 구인구직란이 탑화면에 나오는데, 여전히 구인도 많고 이제는 구직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자바 인력 시장은 그러나 최근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 5부에서는 그에 대한 살아있는 목소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 9월, 그러니까 올해로 2년을 채우고 3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욱 일한 것은 아니니까 대강 2년넘게 현업에 종사했다고 보면 되겠죠. 프로젝트 위주로 작업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사람도 많고, 어려운 때를 함께하다보니 참 많이 친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한참 재교육의 바람이 불었던 시절, 자바-서블릿-JSP를 학원에서 배우고 처음 입사한 분과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전에는 컴퓨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셨는데, 우연히 동사무소에서 일러주어 이쪽으로 투신하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의욕은 참으로 대단하셨지만, 솔직히 부족한 점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이분에게 예제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었죠. 그리고 3개월뒤 저는 오히려 그분의 도움으로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이러한 "밀고 당겨주는" 미덕을 기대하기 어려운가봅니다. 하긴 요즘은 경력자도 많은데 누가 굳이 초보자를 뽑으려고 할지 그것도 의문이죠. 그러다보니 이제 막 일자리를 구해야할 미경력 프로그래머에게는 부족한 경력을 쌓게 해줄 기회조차 없는 참으로 당혹스런 현실이 거짓말같은 현실이랄까요.

경력자라고 배땅땅 두드리며 편안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자바 웹쪽을 하고 있는 제 친구는 근 1년일하면서 이제 3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거의 6개월마다 회사를 바꾸는 셈인데, 하긴 이친구보다 더 자주 옮기는 분들도 꽤 계시죠. 처음에는 무작정 일하려고 들어갔다가, 회사가 기울면서 좀 더 비전있고 새로운 것을 하는 회사로 옮겼다가, 그 회사도 기울면서 현재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못마땅해하는 것은 "자바의 사대성", 즉 지나친 미국의존성입니다. 시쳇말로 "남이 해놓은 거 따라하기 아니면 써먹기"라는거죠. 최근 국내에서도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를 비롯하여 다양한 솔루션이 나와 위안을 주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핵심적이며 파괴력있는 자바 기술 연구는... 한국의 어디에선가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자리는 어디 있나요?

J2EE, 보안, 모바일... 다들 연구도 하고 솔루션도 만들고 컨설팅도 하고 한다지만, 결국 다 썬과 JCP멤버들,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이 의견 조율해서 이루어놓은 바탕위에 선 표층적인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자바의 모든 순수, 응용 기술에 대한 연구와 참여 과정은 투명하게 열려있음에도, 가끔이나마 스펙 참여 명단을 볼라치면 한국의 기업도, 한국의 전문가도, 한국인의 이름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결국

"주도하지 않고 주도당하는데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

을 안고 늘쌍 새로운 기술 쫓아가기에 바쁜것이겠지요. 아마 톰켓을 쓰기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에서 2002년 1월 23일 현재 39명의 코미터(톰켓 공식 개발 참여자)중 단 한명의 코미터도 배출하지 못하고 사실은 이런 현실을 구슬프게나마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언어 장벽은 진정 높습니다. 만약 영어만 아니라면 톰켓 코미터정도가 아니라 그이상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우리의 엔지니어들이건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최근 XP라는 신 프로젝트 수행론에서 보면 "문서를 작성하지 마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코드로, 주석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하라는 말인데, 코드 자체가 영어인고로 영어문화권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는 다소 위화감이 큰 정책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러다보니 개발자에게는 개발 능력뿐만아니라 외국어(크게는 영어)능력까지 요구하게 되고 돈은 똑같이 받도 남들보다 배로 고생하는 이런 직업, 권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요.

저는 솔직한 심정으로 SDS나 서울대와 같은 굵직한 산학기관에서 오직 자바만을 연구하는 순수 자바 연구소를 만들지 않을까... 예상과 희망을 했었습니다만, 6년이 지난 자바의 이력이 아직은 부족한지, 아니면 썬 한국지사의 위상과 무슨 미묘한 관계가 있는지 그닥 파워풀한 연구기관은 세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몇몇 전문가 집단이 벤쳐형식으로 연구소를 창립하고는 있지만, 당장의 운영비용도 대기 버거운지라 기존 기술 해설과 강연, 그리고 대중 서적 출판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런 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일에만 치우치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패기에 의욕에, 이제는 경험까지 쌓은 훌륭한 인재들이 뜻을 품고 있음에도 "창조의 장"을 마련해주지못하는 현실에는 저마저 깊은 사과를 드리고 싶을 정도군요.

이러한 수동적 자바 기술 실천 형태는 단지 앞서가고 있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로 그치는 현상이 아닙니다. 엔지니어에게는 용기와 더불어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안그래도 같은 연령대의 성공한 주변인들보다 금전적으로나 사회지위적으로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자신을 위안하고 가족을 돌보며 사회에서 떳떳한 한명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정신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밖에요. 그리고 그런 자부심은 "남이 미처 생각지도 하지도 못하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창조성과 "이 세계를 이끄는 기술을 이끌어간다"는 진취성으로부터 싹틉니다. 남들보다 연봉이 턱없이 많아서 목이 뻣뻣해지고, CTO, CEO단다고 해서 어깨 으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엔지니어만이 느끼고 가질 수 있는" 보람, 그리고 즐거움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요.

한동안 개발자, 아니 자바 프로그래머에만 국한시켜도 온통 "대박대박대박"만 머리속 마음속 가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바 프로그래머를 원하는 곳에 벤쳐가 많으니까, 회사의 모토에 익숙해지는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니지만요. 그러나 이제 그 허상도 서서히 벗겨지고, 과연 한두해 먹고사는 것도 아닌 인간의 수십년 인생에서 대박은 엔지니어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는지, 이제 막 새로운 가치관이 들어서려 하고 있어 보입니다.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자바 교육 현장이 제시하고 있는 학습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겠습니다. XML이 유행인지라 XML을 가르치는 것까지는 나쁘진 않은데, 정작 웹 개발자에게 더 절실한 것은 전반적인 네트웍 구조, 특히 TCP/IP과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의 이해가 아닐지. 자바가 네트웍을 위한 언어라고 자랑은 떨면서, 정작 그 기반이 되는 환경은 입 싹 닦은 체 네트웍관련 API조금 다룬다고 자바 네트웍이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제 점차 분산처리환경도 저변이 넓어지고, 더 다양한 장치, 더 넓은 망에서 펼치질 자바 기술의 기초가 무척 취약하다, 특히 자바를 처음으로 배우고 익혀야할 시점의 분들에게 자바 플랫폼만 가르치고 진짜 플랫폼에 대해서는 눈을 가린다면 역시 반쪽짜리 엔지니어로서 늘 뭔가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할 것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역으로 자바 엔지니어 자신들이 발벗고 나서서 더 나은 자바 코드를 만들기위해 기술을 연마하고 공개하며 함께 하는 작금의 따뜻한 분위기입니다. 점차 자바의 깊숙한 문법과 건실한 코드 작성의 길을 한국의 자바인들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영어로는 있는지 몰라도, 우리말로 설명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짠 예제가 가져다주는 감동이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지금, 2002년의 오늘까지는 어쩌면 자바 프로그래머, 더 나아가 자바 (애플리케이션) 디자이너는 어딘가에 종속되어있습니다. 사용자에게, 회사에, 사대주의에, 각박한 현실에, 그러고 어쩌면 개인적인 상황에.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TV에서 한 노인분이 나오셔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전쟁의 포화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와, 나라에서 손꼽히는 무역상사의 회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을 넘고넘어 이제는 하얀 머리칼와 깊이 패인 주름만이 얼굴에 남았지만 묘하게도 "추하다"는 느낌이 전혀없었습니다. 대담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부탁하는 "요즘을 사는 젊은이를 위한 한마디"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본분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회사인은 회사인, 공무원은 공무원, 기술자는 기술자, 학생은 학생.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에 매진하기를 바랍니다. 역경과 고난에서 분명 힘이 될 것입니다."

얼핏 보면 모순적인 것 같은 본분과 꿈. 본분이라고하면 마치 발전이 없는 나태와 안주의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일까요?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본분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대신 "대박의 꿈"이 그 자리를 대신한 듯 싶습니다. 본분을 지키며 꿈을 이룬다... 그래서 그분의 모습에는 여유와 강인함이 공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은 역경과 고난의 순간 당신의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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